공허로 엮는 궁핍한 바느질 Needy sewing with emptiness, 2023


벽은 자주 흔들렸다.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 꾸짖는 소리와 때리는 소리…. 소리에 휩싸여 울렁일 때면 천장을 보았다. 집과 집 아닌 곳을 나다니면서 골똘하게 쳐다본 광경은 천장이었다. 모든 천장은 엇비슷한 색이었지만, 실금은 미묘하게 달랐다. 좋아하는 실금도, 싫어하는 실금도 없었다. 붕대 같아서 내가 동여매지는, 그런 감각만이 있었다. 발을 내디딜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내가 나를 낱낱이 파헤치고 죽이려고 들 때면 머리맡에 횃불 같은 게 보였다. 들키고 싶지 않아. 들키고 싶지 않아. 들키고 싶지 않다고. 사정해도 그 불은 나를 비추는 게 옅어지지 않았다. 그 불은 고양이의 연두색 눈망울이었다. 고양이의 눈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굴다가 응시가 이어지면 나의 연약한 부분을 툭 건드렸다. 오래도록 갈망했던 긴 응시, 이해가 타자와 이루어지는 순간. 그 순간이 밤마다 차곡차곡 쌓였고 고양이의 눈이 내 심장 한쪽 귀퉁이에 서식하게 됨을 느꼈다.
그의 눈을 담은 뒤로는 다음 날에 일어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잠시 고양이의 이마를 누르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고양이는 침대에서 누워 나를 배웅했고 돌아오면 문지방에 양발을 갖다 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게 한 사람을 얼마만큼 중요한 일인지 나는 고양이의 인기척 때문에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순간을 영원이라고 느꼈다. 왜 내가 그 순간을 영원으로 느꼈는지 설명할 재간이 없다. 그저 영원이었기에. 어느 날 아침에는 불이 옅어지는 게 몸으로 체감됐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따뜻하지 않았다. 아침이 단정하지 않았고 어수선함 사이에 힘 빠진 고양이가 있었다. 간식을 들이밀어도 반응이 없고 팔을 치켜들어도 저항 없이 떨어트릴 뿐이었다. 나는 네가 영원히 살 줄 알았어. 영원…? 고양이는 병원을 전전하며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같이 있고 싶다고. 병을 낫게 하는 법을 모르는 나는 유리창 너머에 고양이를 두고 왔다.

고양이를 두고 병원을 떠나올 때마다 신체 부위 어딘가가 화끈거렸다. 어느 날은 그의 원망인 듯했고 어느 날은 그의 설움인 듯했다. 마지막 날에는 허벅지 안쪽이 화끈거렸는데 그 통각이 명백히 사랑이란 게 느껴졌다. 그날은 고양이가 체력을 쥐어짜 내서 내 품에 안겼다. 병실 안에 넣어도 다시 내게 몸을 던졌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수의사의 만류에 고양이를 집에 데려올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수상한 감촉을 좀 더 믿었어야 했다. 새벽녘에 수의사의 전화를 받았다. 고양이의 혈압이 떨어지고 있고 체력을 다해가는 것 같다고. 다시 마주한 고양이는 야윈 얼굴로 겨우 불을 지키는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불을 끄고 싶지 않았다고.
그의 의식을 지키기 위해 턱을 쓰다듬었다. 어처구니 없는 노래를 작사해서 흥얼거렸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우리의 집으로 가자, 흥얼거렸다. 집으로 오는 길을 용케 버틴 그는 집에 도착하자 여기가 정말 집이냐고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나는 끄덕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이불에 고개를 박고 잠들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목 마를까 봐 내가 주었던 물을 게워 내고. 조금만 더 살아달라고 애원하는 내 품에서 괴로움을 토해내고 육신을 떠났다. 불이 꺼졌다. 불이. 불이야. 불이야. 뜨겁겠다. 뜨겁겠다. 외치니 고양이는 가루가 되었다. 너는 뜨겁지 않을 텐데. 그렇지, 그런데 외치고 싶었던 것 같다. 뜨겁겠다고. 고양이가 떠나고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 내 시간은 어수선하다. 그의 죽음 전후가 단락이 크게 나뉘어서 시간선이 무너지고 있다. 그런 문자를 보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고양이가 죽어서 오늘 일을 못 할 것 같아요! 고양이가 죽어서 너를 만나고 싶지 않아. 고양이가 죽어서 널 사랑하지 않아. 죽음의 효력이 언제까지인지? 나를 얼마나 봐줄 수 있겠어요? 그런. 또, 그런 생각을 한다.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가 있었고 그 시간이 절기처럼 지나가 버렸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여기 한 사진이 있다. /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내가 꾸린 집, 노을이 지는 자리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솟아오른 산을 빼꼼, 쳐다본다. 나는 그 모습을, 뒤에서 한참 바라보다가, 찍는다./ 이 사진이 내가 가진 최상의 행복이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런 층위의 행복은 내게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화창한 얼굴로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죽음 옆에 고꾸라진다. 고양이가 썼던 식기에 사료가 담긴 채 그대로, 고양이가 게워낸 액체가 묻은 이불을 빨지 않고 그대로 안고 잠든다. 유골을 뿌릴 자신이 없어 유골함에 실리카겔을 넣어두었다. 유골도 대충 보관하면 곰팡이가 핀다고 누군가가 일러줬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흔적과 토사물을 건너뛰면서 청소기를 민다. 죽음을 핥고 싶다. 이 죽음은 유달리 축축했다. 아픈 고양이는 투병 기간 동안 침을 많이 흘렸고 죽기 전에도 액체를 토해냈고 나는 그가 떠난 뒤로 며칠 내내 울기만 했다. 고양이에게 인공호흡을 하며 그의 침을 빨아들였고 그가 꽂고 있던 비강 호스를 꺼내 쭉 빨아들였다. 같이 있고 싶어서. 이 죽음에서 핥을 수 있는 게 남아있다면 핥고 싶다.
매일 눈을 뜰 때마다 죽음의 형태가 달라져 있다. 주름진 얼굴로 나의 얇은 미래를 점지해 주다가도 담요가 필요한 아기의 모습으로 내 옆에 누워있다. 나는 피아노를 배울 때처럼 손을 둥글게 말아 죽음의 윤곽을 쓰다듬는다. 어루만지는 걸 여전히 좋아하는구나. 네가 죽어서도. 네가 죽음이라도. 투명도가 생긴 고양이는 살아있을 때와 비슷하게 침대 언저리에 얼쩡거리고 내가 집이 아닌 곳, 멀리 떠나면 하늘에 구름 혹은 색으로 맺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미련이 많은 우리는 어떻게 헤어져야 할까. 겨우 과거를 살지 않게 됐는데… 내가 사랑한 너의 감촉은 과거에 있고. 투명한 덩어리가 된 너는 나의 결정을 몇 달째 따분하게 기다리고 있다. 잘 가. 너를 한 움큼 먹어서 합쳐질까. 아니면 네가 다른 몸에 담겨 다시 태어나길 소원할까. 너는 무엇이든 괜찮다는 표정이고 이미 자유롭지만, 나 혼자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봄이 오고 싹이 트면 유골을 뿌릴 거고 네가 날아가는 방향이 우리의 정설, 미래라고 여길 참이다.

있잖아. 나는 이제 과거의 펄에 빠지고 싶지 않아.
네가 있었을지라도. 내게 전해준 마지막 보살핌. 앓는다는 건 장기가 마르고 조여지는 것. 침 흘리는 얼굴을 기억하며 제 육신을 소중히 대할 것. 상상으로라도 자신을 해치지 말 것. 이곳으로 따라오지 말 것. 오더라도 천천히 올 것. 없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 없음을 공허로 엮는 궁핍한 바느질은 이제 관둘 것… 그런. 허나 누렇게 상한 네 몸이 아른대서 삼키지 않았다. 이걸 제대로 삼키는 날엔 네가 다른 차원의 문을 열고 떠날 게 뻔해서. 고귀하여서. 춥게 자지 말라고 네가 참 오래 애써주었지. 여긴 아직 겨울이고 춥다. 어젠 눈이 많이 내렸다. 시간이 지나면. 지나고 또 지난다면. 나는 네가 남기고 간 잉걸불로 불을 지필 게다. 하늘로 치솟는 너를 말리지 않고 오래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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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에게 Dear Cheese